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책 표지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책 표지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AI의 시대를 바라보노라면 이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서늘함, 일종의 두려움 섞인 묘한 감정들에 휩싸인다. 지금의 세상은 느닷없이 찾아온 요상한 기능을 가진, 사람이 만든 그 지능으로부터 어떠한 질문이든 지체할 틈도 주지도 않고 쏟아지는 정답을 맛보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의 지적 노동은 물론이고 창작의 영역까지 대체하는 그 속도를 체감할 때마다 편리함 이면에 감추어진 그 기묘한 기분을 숨길 수가 없다. 내가 가진 모든 질문에 척척 답을 내놓는 이 신비한 지능의 시대에 인간의 사유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저자 야마구치 슈는 실제적 삶과는 괴리감이 크고 난해한 학문으로 여겨졌던 철학을 경영적 사고를 통해 생활 가까이에서 보고자 한다. 대부분 철학사조 혹은 역사순서로 쓰인 철학서와는 달리 실생활에서 철학이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다르게 접근했다. 그렇게 오래된 과거의 책으로 먼지만 쌓여가던 고대부터 현대 철학자들의 사상까지, 주옥같은 주제들을 꺼내 현실감각으로 풀어간다. 놀라운 것은 단순히 철학자들의 이름과 사상을 외우는 식의 파편화된 지식 대신 여전히 철학이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고 우리의 실재가 된다는 그 가능성에 있다. 불확실한 시대, 거대한 기술의 파도 앞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인간다움을 지켜내고 창의적인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실용적인 도구로서의 철학을 두고 그 쓸모를 찾아간다.

시기상 저자가 AI의 시대를 상정하고 책을 쓰지는 않았겠으나 충분히 지금 상황 가운데 필요하고 어울리는 제시를 했다. 사람과 조직, 사회와 사고(思考)라는 4가지 주제를 두고 이 가운데서 철학이 어떻게 창의성과 리더십,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기반이 되는지를 50가지로 소개했다. 그리고 익숙한 전제를 의심하게 만들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왜?"라고 묻는다. 세상을 위한 혁신은 언제나 이런 질문 가운데서 시작되었기에 철학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판단하게 하는 가치의 나침반이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야마구치 슈가 제시하는 철학의 쓸모는 '상식의 틀을 깨는 비판적 사고'에 있다.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 세상에서 가장 그럴듯하고 오류 없는 평균의 답을 도출해 낸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고도화될수록 현실 가운데 더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 인간이 만든 지능은 "어떻게"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어도,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혹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가치 지향적 질문을 스스로 던지지는 못한다. 철학은 바로 그 질문,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의 규칙에 대한 틈을 내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설계를 할 수 있다. 그것이 철학이 가진 진정한 쓸모다.

과거의 사회는 남들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을 가진 인간을 요구했고, 우리는 그 기준에 맞춰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써왔다. 그러나 그 영역에서 인간은 더 이상 AI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기능에 있어 상향 평준화된 시대 속에서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보루는 철학을 토대로 어떻게 사고하느냐에 달려있을지 모른다. 최근 미국에서 컴퓨터 전공자보다 철학 전공자가 취업에 앞서 있다는 통계가 아마도 이에 대한 증명이지 않을까. ‘왜’라고 묻고 이에 답을 할 줄 아는 철학적 사고능력이 세상을 다시 그려갈 수 있다. 앞으로 AI는 더욱 똑똑해질 것이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길어 올리는 힘은 오직 사유하는 인간의 몫이다.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꿈꾸는 힘,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능력, 그리고 인간을 진정으로 품위 있게 만들고 제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제대로 사유하는 사람에게서 일어난다. 실제적으로 적용된 철학은 그 자리의 출발이자 길이 될 수 있다.

백성창 목사 (이천창전교회)